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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진짜 공포, 왜 거기 가면 안 되는가?

by 블립정보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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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곤지암 포스터 – 폐허가 된 정신병원과 음산한 하늘 아래 ‘가지 말라는 곳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문구가 새겨진 이미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 다시 마주한 영화 〈곤지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혼자 방 안에서 불 끄고 이어폰 끼고 재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면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마자 느껴졌던 그 묘한 기운.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실제 곤지암 정신병원 근처도 검색해 보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체험담을 읽으며 혼자 괜히 겁먹곤 했다. 영화 〈곤지암〉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 안엔 리얼함이라는 이름의 이질적인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설정 자체는 뻔하다. 공포 체험을 하겠다며 폐병원에 들어간 유튜브 크루가 하나둘 이상한 일을 겪고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는 내용.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뻔한 서사를 정말 기가 막히게 ‘진짜처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 리얼함의 끝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택한 〈곤지암〉은 보는 내내 ‘이거 진짜야?’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카메라 흔들림, 어색한 침묵, 대사 중간중간의 헛웃음과 욕설까지. 마치 우리가 유튜브에서 흔히 보던 라이브 방송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배우들의 이름도 극 중 이름과 동일하게 설정해서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한 것도 탁월했다.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등 당시엔 신인이었던 이들이 보여주는 ‘날 것’ 같은 연기는 오히려 이 작품의 진짜 무기가 되었다. 이들이 연기한 게 아니라 정말로 공포를 경험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카메라 너머의 공포 – 관객을 낚는 방식

〈곤지암〉이 공포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단순한 ‘귀신 출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 한참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오히려 장난기 섞인 분위기다. 웃고 떠들고, 조명 켜고, 셀카 찍고. 그래서 관객도 긴장을 풀게 된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함정이다.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살짝 이상해지고, 소리 없이 문이 닫히거나 누군가의 시야에 기묘한 형체가 잡히기 시작한다. 관객이 “설마?” 하고 생각할 때쯤, 영화는 본격적으로 공포를 들이민다.
특히 402호를 향한 장면들.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던 그 방의 문이 열리는 순간, 모든 리듬이 깨진다. 그 이후부터는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포가 관객을 덮친다.

진짜 무서운 건 공간 그 자체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장소는 실존했던 곳이다. 이미 많은 괴담이 퍼져 있었고, 실제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도 다양한 ‘탐험기’가 존재했다. 감독 정범식은 이 공간을 차용하면서도,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지 않고 세트를 만들어 구현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현실적이었다. 벽에 남은 곰팡이 자국, 삐걱대는 침대, 덜컥거리는 문소리. 이 모든 게 정말로 그 안에 사람이 살았고,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카메라를 들고 병원 안을 걷는 장면에선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갑자기 화면을 가로지르지 않아도, 문득 스치는 기운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남겨진 이야기들 – 공포 그 너머

〈곤지암〉은 단순히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남긴 건, 사람의 심리를 조이고 끝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그 묘한 여운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귀신의 등장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왜 저들은 끝까지 방송을 포기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왜 그걸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결국 공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자극을 원하고 있다는 것도.

다시 돌아보는 〈곤지암〉 – 한국 공포의 기준

이후 수많은 한국 공포영화가 등장했지만, 아직도 〈곤지암〉만큼의 리얼함과 몰입감을 준 작품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장르 자체에 새로운 기준을 세운 셈이다.
리얼 공포라는 틀 안에서, 과하지 않게, 하지만 극도로 불편하게. 정범식 감독은 공포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완성해 냈고, 그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마무리하며

지금 다시 〈곤지암〉을 보면,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 단순한 장면 하나하나에 숨은 연출 의도, 카메라 위치의 치밀함, 배우들의 즉흥 같은 리액션.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안다. 공포란 건 귀신이 아니라, 그걸 믿는 사람들의 상상에서 자란다는 걸.
어쩌면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내가 그 상황 속에 들어가게 만드는 힘 때문이 아닐까. 마치 한밤중 방 안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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