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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1999), 금기의 경계를 넘다

by 블립정보 202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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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관계와 욕망을 그린 금기 소재 영화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거짓말>(1999) – 금기의 경계를 넘어서

<거짓말>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거셌는지, 영화 자체보다 뉴스나 비판 글이 더 많이 눈에 띄었던 시절이었다. 장선우 감독의 문제작. 파격적인 표현. 외설 논란. 하지만 그 모든 걸 걷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거짓말>은 말 그대로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사랑과 욕망. 나이 차. 사회적 도덕. 이 영화는 그 경계 안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를 넘으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일까, 욕망일까 – 그 애매한 경계

영화는 18살 여고생 ‘Y’(김태연)와 38살 조각가 ‘J’(이상현)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설정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자극적인 외피보다는 그 안의 감정에 더 집중한다. 단순한 연애도 아니고, 단순한 성적 관계도 아닌, 뭔가 설명하기 애매한 관계.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처음엔 욕망으로 시작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둘은 점점 감정에 휘말린다. 서로를 탐하고, 확인하고, 질투하고, 상처받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감정이 욕망을 넘어선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감독은 그걸 끝내 정의하지 않는다. 그저 묻는다. 이게 사랑이냐고. 아니면 그냥 충동이었냐고. 그리고 그 질문은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감정과 사회 규범 사이, 어디까지가 개인의 자유일까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이건 안 돼’라고 정해둔 기준들을 하나씩 건드리기 때문이다. 나이 차, 권력관계, 성적 표현. 하나만 있어도 민감한데, <거짓말>은 그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모든 장치들이 단순한 자극을 위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감독은 사랑이 사회적 도덕이나 규범으로 완벽히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감정이란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때론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시작되고 끝나기도 한다고.

장선우 감독의 도전적인 시도

장선우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늘 도전적인 연출을 해왔다. <거짓말> 역시 그중 하나였다. 연출 방식도 파격적이었고, 인물 간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방식도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기존의 영화 문법에서 벗어나려 했다. 인물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 관계 안에서 생기는 감정의 균형, 그것이 무너지는 과정까지. 모든 것을 이미지와 감각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 때론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정적으로는 더 가까이 다가온다.

논란과 평가 – 외설일까, 예술일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외설 영화’, ‘포르노’, ‘관람 금지’ 같은 단어들이 따라붙었다. 실제로 국내에서 상영이 제한되었고, 일부 국가는 아예 상영을 금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해외에서는 다른 평가가 이어졌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한국 영화가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엔 이 영화가 지나치다고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때 그 영화가 있었기에 지금 이런 작품들도 가능해졌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 이후 한국 영화들이 성적 표현이나 인간관계의 복잡한 감정선을 훨씬 더 자유롭게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과했지만 지금 개봉했더라면? 글쎄,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영화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극 뒤에 남는 질문들

<거짓말>을 단순히 수위 높은 영화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이 관계는 진짜 사랑이었을까? 욕망만 남은 관계였을까? 사회가 정한 도덕 기준은 정말 절대적인 걸까? 그 기준을 넘는 감정은 모두 잘못된 걸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런 감정을 한 번쯤 진지하게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가 여전히 논의되고,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다시 돌아봐야 할 문제작

<거짓말>은 분명 불편한 영화다. 보는 내내 쉽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지고, 때론 눈을 돌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단순히 불쾌함만 남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사랑이 무엇인지, 욕망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사회적 규범은 정말 절대적인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이란 결국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고 한다면, <거짓말>은 그 출발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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