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 영화 ‘국제시장’, 가족이란 단어 앞에서 울컥한 이유
영화 "국제시장"을 다시 꺼내보게 된 건,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였다. 작업복을 입고, 먼지 묻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 웃음 속에는 말 못 할 세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영화는 마치 그 사진 속 한 장면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니다. 덕수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시간들을 하나씩 되짚게 만든다.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는 내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버지 같은 인물이다. 억척스럽고, 말은 없지만 책임감 하나로 버티는 그런 사람. 영화 초반, 흥남철수 장면에서 어린 덕수가 아버지 손을 놓치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너무 꾸며낸 이야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 파독 광부에, 현대사 중요한 장면이 다 들어가 있어서 살짝 과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니까 달랐다. '아, 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세대의 기억이구나' 싶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살아낸 진짜 이야기였다.
덕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이 되고, 동생들 공부를 뒷바라지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희생처럼 느껴지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삶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게 참 마음 아프다. 그 당연함이 누군가의 청춘을 앗아간 건데, 누구도 그걸 위로하지 못했다.
김윤진이 연기한 영자는 덕수의 삶에 작은 빛처럼 다가온다. 둘의 로맨스는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첫 만남, 서툰 데이트, 결혼 후의 삶까지. 그저 서로를 믿고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특히 덕수가 아버지처럼 묵묵히 일하고, 영자는 뒤에서 가족을 챙기는 장면들은 마치 내 부모님 세대의 일상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오달수가 연기한 달구. 이 인물 없었으면 영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을 거다. 웃음 포인트이면서도,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 누구나 인생에 그런 친구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농담 속에 따뜻함이 있고, 허세 속에 진심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특히 덕수가 늙어서 혼자 가게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은 정말 말없이도 많은 걸 전했다. 가족과의 추억, 못다 한 이야기,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들. 그 모든 것이 그의 표정 안에 있었다. 그 장면에서 울지 않은 관객이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와의 약속. "가족을 잘 부탁한다"는 말 하나에 평생을 바친 덕수를 보며,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말 없이 묵묵히, 때론 억지로라도 책임을 짊어지고. 그 무게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제시장"은 그저 과거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오늘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한동안 멍해진다. 마음속 어딘가가 울컥하고,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집에 있는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고, 괜히 한번 안부 전화를 걸게 된다. 그런 영화다. 잊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주고,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영화.
이 영화가 더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제시장'은 그 시대를 겪은 어른들에겐 위로이고, 그 시대를 알지 못했던 젊은 세대에겐 교육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걸까?"
또한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과거의 재현은 굉장히 공들여 표현되었다. 독일 탄광의 어두운 갱도, 베트남의 전장, 흥남부두의 혼란스러운 피란 현장까지. 세트나 연출에서 그 시대를 살아본 듯한 사실감이 느껴진다. 그냥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담아낸 것이 인상 깊었다.
"국제시장"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되짚어준다. 가끔은 삶이 벅차고 지칠 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용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거울 같은 존재로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다시 보게 만든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혹은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진심을 담고 있는 영화다.
"국제시장"은 결국 덕수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될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진심 때문이다. 누구든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영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