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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 정의란 이름의 전쟁, 살아남은 자들의 진짜 이야기

by 블립정보 202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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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차 포스터 – 설경구와 박해수가 주연을 맡은 한국형 첩보 액션 스릴러, 국정원 블랙팀과 검사의 대립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야차 – 정답 없는 세상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

영화를 고를 때 나는 종종 기대를 최대한 낮춘다. 그래야 덜 실망하고, 어쩌다 좋은 영화라도 만나면 그 감동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야차〉도 그랬다. 설경구와 박해수, 두 배우의 이름만 보고 그냥 틀어본 영화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했다. 근데 참 이상했다. 초반부터 자꾸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스릴러나 액션이라기보다는, 마치 도망칠 수 없는 질문에 끌려가는 기분. 그 질문은 명확했다. '정의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검사다. 박해수가 연기한 ‘한지훈’. 딱 봐도 원리원칙, 그 자체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하고, 법대로 해야 하고,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는 한국 영화에서 자주 본다. 처음엔 식상할 것 같았다. 근데 묘하게 다르다. 그가 뭔가를 놓지 않으려는 눈빛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처럼 보였다. 세상에 휩쓸릴까 봐, 자신마저 무너질까 봐 애써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
반면, 설경구가 맡은 ‘지강인’은 정반대다. 불법도 불사한다. 필요하다면 거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결과가 중요하다. 그가 이끄는 블랙팀은 국가를 위해 일하지만, 그 방식은 법 밖이다. 처음엔 그가 단순히 ‘차가운 괴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의 눈에도 어떤 불안과 상처가 있었다. 자꾸만 혼자 남으려는 사람. 책임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듯이. 그래서 더 외로워 보였다.
이 두 사람이 부딪힌다. 극적인 갈등이 만들어지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당연하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니까.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갈등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지강인이 틀린 것도, 한지훈이 옳은 것도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흑백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걸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무섭고, 더 진심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중국 선양이다. 화면은 다소 차갑다. 회색빛 도심과 흐릿한 하늘, 그 안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조심스럽다. 감정도, 행동도. 그런 분위기 안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단순히 ‘볼거리’로 소비되지 않는다. 액션이 있을 때마다, 그 안에는 이유가 있고, 갈등이 있고, 마음이 있다. 쫓고 쫓기며 싸우는 장면들이 많지만, 진짜 싸움은 그들의 내면 안에서 벌어진다. 누구 말처럼 ‘총을 든 이유’가 더 중요하니까.
나는 특히 중반 이후의 흐름이 좋았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 그 순간들. 그냥 화해하거나, 감정적으로 쏟아내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묵묵히 서로의 방식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모습. 말은 거의 없는데, 눈빛이 다 말해준다. 설경구의 그런 연기, 정말 탁월하다. 대사보다 숨소리, 걸음걸이 하나로 마음을 전한다. 박해수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고 뚝심 있는 그 연기가,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온다.
조연들도 좋았다. 이엘은 늘 그렇듯 절제된 강렬함을 보여줬고, 양동근은 의외로 되게 안정적이었다. 진영은 처음엔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표정이 인상 깊었다. 이 사람들이 만든 블랙팀은 실제로 존재할 법한 팀처럼 보였다. 완벽하지 않고, 인간적이고,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재미있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본 뒤에 말문이 막히는 영화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고, 딱 떨어지는 교훈이 없다. 하지만 그게 진짜 현실 같았다. 우리는 자꾸만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인생은 늘 물음표다. 〈야차〉는 그 물음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때론 실수도 하고, 때론 의심도 하고, 때론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
결말은 간단하지 않다. 누군가는 희생되고, 누군가는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 안에선 어떤 이해와 변화가 있었다. 지강인은 변했을까? 한지훈은 무엇을 버렸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나는 그런 여운이 좋았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계속 장면들이 반복되고, 내가 그 인물들 안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야차〉는 '누가 옳았는가'를 따지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선택이 남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선택은 관객 각자에게 맡긴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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