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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 리뷰 외로운 아이들의 목소리

by 블립정보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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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청소년의 현실과 사회 비판 드라마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 그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아팠을까?

이환 감독의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관객을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밝은 장면도, 유쾌한 대사도 거의 없다. 대신 청소년들의 현실, 그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야기는 차분하게 시작되지만, 그 분위기가 무거워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연기가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유미, 하니, 신햇빛이 연기한 인물들은 정말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아이들이다. 그들이 겪는 일이 낯설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진심

주인공 세진은 아직 어린데, 혼자서 임신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말해봤자 이해해 줄 어른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유미는 이 복잡한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억지 눈물이 나 극적인 연출 없이, 그냥 세진이라는 아이 자체가 되어 있다.
그 눈빛이, 짧은 숨소리가,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나 진짜 무서워”라고. 그리고 그 감정은 스크린을 넘어 그대로 가슴을 찌른다. 나도 모르게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강한 척, 괜찮은 척

하니가 연기한 주영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아픈 아이였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뻔뻔해 보일 만큼 센 척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외로움이 있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더 세게 말하고, 더 거칠게 행동하는데, 그게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면이라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저릿하다.
하니는 이 캐릭터를 정말 섬세하게 표현했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특히 세진과 주영이 함께 있는 장면은 진짜 좋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빛과 숨결만으로도 ‘우린 같은 마음이야’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이 없어도 둘 사이엔 분명히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다.

진짜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답답한 존재는 다름 아닌 어른들이다. 세진과 주영이 이렇게까지 외롭고 힘든 이유는 단순히 상황 때문이 아니다. 이 아이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말로는 “걱정돼서 그런다”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 기준대로 판단하고, ‘내 말이 맞다’고 밀어붙인다.
감독 이환이 직접 영화에 출연해 그런 어른 역할을 맡은 것도 참 의미 있었다. 그는 그 캐릭터를 통해 “이게 현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객에게 “당신도 혹시 이런 어른 아니냐”라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이야기보다 더 많이 남았던 음악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음악의 사용이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충분히 강한데도, 음악이 너무 자주 나오고, 때로는 너무 커서 대사가 잘 안 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감정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음악이 그 감정을 덮어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감독이 청소년들의 감정을 더 강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음악을 활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영화의 리얼함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조용히 감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가끔 앞서 나가버렸다.

꾸며내지 않은 이야기의 힘

‘어른들은 몰라요’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러 감정을 끌어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와닿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한, 아니 어쩌면 진짜 존재하는 아이들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고, 그래서 더 외면할 수 없다.
이환 감독은 전작 ‘박화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현실을 그려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 깊고 더 아프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현실적이다. 그 어떤 장면도 ‘영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의 삶을 엿보고 있는 느낌이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영화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잔잔한 감동이나 따뜻한 여운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진실을 꺼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종종 미화되거나 단순화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도, 연출을 한 감독도, 그 누구도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이유미와 하니의 깊이 있는 연기, 이환 감독의 솔직한 시선, 그리고 아이들의 아픈 현실이 하나로 이어져 ‘어른들은 몰라요’는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된다. 쉽지 않은 영화지만, 반드시 필요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줬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영화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제 몫을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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