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무법자》 리뷰: 잊고 있던 현실이 다시 떠오르다
영화를 보다 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처음엔 단순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한 남자가 직접 나서서 악을 처단한다는 익숙한 이야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영화 속 장면들이 자꾸만 현실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사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분명 그때도 다들 분노했고, 뉴스는 떠들썩했으며 사람들은 정의를 외쳤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됐던가. 가해자는 빠져나갔고, 피해자는 잊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무뎌졌다. 나 역시 그렇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무법자》는 그 잊었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 보여줬다.
법보다 느린 정의, 그리고 한 남자의 선택
영화의 주인공은 경찰이다. 처음에는 법이 정의를 실현해줄 거라고 믿었다. 정직하게 일하면 악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많은 사건을 마주하며 그는 깨닫는다. 법은 때로 너무 늦게, 혹은 전혀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피했고, 억울한 이들은 끝내 보호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경찰 배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기로 결심한다. 불의에 눈감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처음에는 통쾌하다. 그가 나서서 해결하는 장면들은 마치 답답했던 현실에 구멍을 뚫어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한다. “그 정도면 잘한 거지”라며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처음에는 분명한 악당들을 처단하던 그가 점점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대상이 모호해지고, 그가 행사하는 폭력은 점점 커진다. 그의 행동을 더 이상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액션이 아닌 깊은 고민으로 흐른다.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묵직한 질문
이 영화는 액션 장면도 분명 강렬하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그 이면에 담긴 질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을 뛰어넘는 정의는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계속 따라온다. 주인공은 처음엔 분명 선한 의도로 움직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조차도 폭력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를 쫓는 또 다른 경찰도 등장한다. 이 인물은 다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주인공과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 둘의 충돌은 단순한 추격전이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방식에 대한 치열한 대화처럼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질문을 받는다.
‘정말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정의를 지키려던 사람이 또 다른 폭력에 빠질 때, 그걸 어떻게 봐야 할까?’
영화는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남긴다.
현실과 너무 닮아 있다
《무법자》가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본 사건들, SNS에서 퍼졌던 이야기들,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영화 속 장면들과 겹쳐진다. 피해자는 외면받고, 가해자는 미소 지으며 살아가는 장면들. 그걸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그래서 더 공감된다. 주인공의 분노가, 그의 절망이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관객은 점점 그 인물과 함께 분노하고, 함께 흔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가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도 느낀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결국 그 안에서 정의는 점점 사라진다.
이 영화는 그걸 냉정하게 보여준다. 복수는 통쾌할 수 있지만, 그 끝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 법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가 심판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머릿속이 복잡했다. 주인공의 선택이 과연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이 그를 그렇게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저지른 일들 역시 정당화되긴 어렵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생각이 맴돈다.
《무법자》는 끝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단순히 액션이 멋져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고 아프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떠오르고, 또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나 한 번쯤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이 영화를 본다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지만 분명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무법자》는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