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전직 조직원의 이야기
영화 <브로큰>은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조용히 살아가던 남자가 동생의 죽음 이후 다시 지옥 같은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주인공 배민태(하정우)는 한때 조직에서 전설로 불리던 인물이었지만 더 이상 그런 과거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평범하게, 조용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했지만, 어느 날 동생 석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제수 문영(유다인)까지 실종되면서 민태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과거로 돌아가 복수의 칼을 쥐게 된다.
형제애, 납득은 어려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형제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감정선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민태와 석태는 극명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태는 차갑고 무표정하며 통제된 인물이고 석태는 감정에 휘둘리고 주변을 끊임없이 혼란스럽게 만드는 철없는 동생이다. 문제는 민태가 동생을 방치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평소 그렇게 무관심하던 형이 갑자기 복수에 미쳐 날뛴다는 설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 진심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죄책감이나 분노에서 나온 감정인지 혼란스러웠다. 민태가 끝까지 냉정한 인물이었기에 더더욱 그 변화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이야기
악역 캐릭터들이 익숙한 배우들로 구성된 점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드라마나 범죄 액션 장르에서 자주 보였던 배우들이 또다시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하니 새로움이 없었다. 연기 자체는 훌륭했지만 이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지고,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럽게 루트를 따라가다 보니 중반 이후 큰 흥미를 느끼긴 어려웠다.
특히 영화의 갈등 구조나 복수의 서사에서 웹툰 <광장>이 떠오른다. 내용이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캐릭터의 감정 흐름, 이야기의 톤, 충돌하는 관계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영화가 주는 인상은 다소 평이하게 느껴졌고, 새로운 이야기를 본다는 기대감은 흐려졌다.
액션은 훌륭했지만, 반복은 아쉬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액션이다. 하정우는 몸을 직접 써가며 치열한 싸움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 억지로 만든 듯한 장면이 아니라 현실적인 동작과 주먹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액션은 인상적이었다. 다만 그 인상도 오래 가지 못했다. 중반 이후 비슷한 구도의 액션이 반복되며 새로움이 사라졌고, 액션의 감흥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초반의 긴박감이 점점 관성처럼 흘러간다는 점은 확실히 아쉬웠다. 액션이 아무리 좋아도 이야기가 그만큼 탄탄하지 않으면 끝까지 끌고 가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
복수의 허무함, 씁쓸한 여운
영화는 결과적으로 복수가 가진 허무함과 파괴력을 보여준다. 민태는 복수를 통해 동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회복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고 자신도 무너진다. 이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복수라는 감정이 얼마나 덧없고,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었던 건 아니다. 민태가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는지, 왜 복수의 길에서 멈추지 못했는지에 대한 내면의 서사가 부족했다. 그래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도달했음에도, 관객으로서 온전히 공감하긴 어려웠다.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돋보였다
하정우를 비롯한 김남길, 정만식 등 주요 배우들의 연기는 탄탄하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하정우의 연기는 여전히 믿고 볼 만했다. 캐릭터 자체는 다소 평면적이었지만 배우들이 디테일한 감정선을 끌어올리면서 빈틈을 메웠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도 이야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가 딱 그랬다. 좋은 배우들이 힘을 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가 부족해 무게감이 떨어졌다.
결론, 나쁘진 않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브로큰>은 전직 조직원이 복수의 길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로서 기본적인 재미는 갖췄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설정, 반복되는 전개, 그리고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선은 몰입을 방해했다. 액션 장면은 인상적이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돋보였지만, 이야기의 힘이 약했다. 좀 더 참신하고 감정적으로 와닿는 서사였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범한 액션 영화 그 이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