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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방관>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알고 있었을까”

by 블립정보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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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방관 포스터 – 실화 기반, 곽경택 감독 연출, 소방관들의 용기와 희생을 담은 2024년 감동 영화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이야기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마음 한구석이 뜨거웠다. 처음 <소방관>이라는 제목을 봤을 땐 솔직히 흔한 재난 영화쯤으로 생각했다. 불 속을 뚫고 사람을 구하는 장면, 몇 번 본 듯한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그 예상은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완전히 깨졌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스펙터클한 장면이나 감동을 노리는 자극적인 연출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한 현실을 꺼내 보여주면서,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곽경택 감독은 이번에도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들의 세계를 꺼내 보여주었다.
<소방관>은 2001년 실제로 발생했던 홍제동 화재 참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잊었거나, 아예 들어본 적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실제로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었다. 영화는 그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 이상 ‘연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물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 때, 그건 단순한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전제가 있으니까. 영화는 우리에게 그날의 현장을 그려보게 한다. 그날, 어떤 사람들은 출근을 하듯 소방서를 나섰고, 누군가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주원이 연기한 ‘최철웅’이라는 인물은 영화 속에서 가장 흔들리는 인물이다. 그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주는 책임감과 사명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실전 훈련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만, 막상 실제 화재 현장에선 망설이고, 때론 실수도 한다. 그게 너무 현실적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 소방관이라고 해서 항상 담대한 것도,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주원의 연기는 그 미묘한 균형을 잘 표현해 냈다. 눈빛 하나, 숨 고르는 모습 하나에서도 그 불안정한 감정이 느껴졌다.
곽도원은 베테랑 소방관 ‘정진섭’ 역을 맡아 극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후배들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수없이 반복되는 위험 앞에서 어느새 굳어버린 감정, 그리고 그 감정 속에 숨겨진 고독까지. 그는 많지 않은 대사로 그 모든 걸 표현해 냈다. 무거운 눈빛과 절제된 몸짓이 오히려 많은 말을 대신했다. 영화 중반 이후, 그가 한 동료의 죽음을 겪으며 터트리는 감정은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누군가를 직접 떠나보낸 사람의 고백처럼 들렸다.
유재명 역시 현실적인 고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구조 현장과 행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충돌이 생기고, 때로는 비겁한 선택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또한 나름의 책임과 사명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 하나를 단순한 선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누군가는 대담하고, 누군가는 조심스럽고, 또 누군가는 외면하면서 견딘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현실이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불길이 번지는 현장에서 팀원들이 줄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이었다. 연기로 가득 찬 공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서로를 부르며, 확인하며, 줄을 놓지 않기 위해 버티는 그 모습. 그건 단순히 장비나 매뉴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지’였다. 현실에서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뉴스에도 오르지 않았던 수많은 구조 현장 속에서 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그 여운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상영이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며 마주친 소방서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곳이, 그날은 낯설도록 따뜻해 보였다. 창문 너머로 누군가가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전기를 들고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이 영화를 봤을까. 아니, 굳이 보지 않아도 그들은 매일을 그런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곽경택 감독은 늘 사람 이야기를 해왔다. <친구>, <태풍>, <통증>… 그의 영화엔 언제나 ‘현실 속 인물’이 중심에 있다. 그리고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국가’와 ‘책임’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안전이란 결국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다는 것. 그 누군가가 겪는 고통과 트라우마는 어쩌면 제도나 보상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감동적이었다’는 한마디로 끝낼 수가 없다. 남는다. 계속 생각나고, 계속 마음속에서 울린다.
마지막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119원 기부 챌린지’에 대한 문구가 등장한다. 관객 한 명당 119원을 기부해 소방관의 처우 개선과 장비 지원에 사용된다는 이 프로젝트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이 무언가를 함께 느끼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상업 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시도였지만, 이 영화에겐 정말 잘 어울렸다. <소방관>은 영화관 안에서만 끝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어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출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돌아오는 길,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소방관들은 항상 누군가의 시작을 지켜보고, 누군가의 끝도 함께한다.” 이 영화는 그 ‘끝’의 무게를 우리가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게 한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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