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안에 있는 건 단순한 생명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은 닫혔고, 마음은 묘하게 먹먹했다.
그냥 어깨가 축 처진 채, 한참을 가만히 걷기만 했다.
<터널>이라는 영화는 그렇게 조용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처음에는 단순한 재난 영화라고 생각했다.
터널이 무너지고, 사람이 갇히고, 그를 구하려는 구조대가 애쓰는 이야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틀에서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
주인공 이정수, 하정우가 연기하는 이 남자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누구나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이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가 딸 생일날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가던 길, 터널이 무너진다.
그냥 그렇게 시작된다.
별다른 전조도 없다.
그저 순식간에 모든 게 무너지고, 그는 고립된다.
그가 가진 건 배터리 78% 남은 핸드폰 하나, 생수 두 병, 그리고 생일 케이크뿐.
그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영화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심한 듯 차분하게 밀고 나간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그 위기 상황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터널이 무너진 순간도 그렇고, 그 안에서 점점 지쳐가는 이정수의 모습도 그렇다.
과장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저 사실처럼, 진짜 일이 벌어진 것처럼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정수는 점점 말라간다.
희망도, 체력도, 감정도 다 말라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버틴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딸이, 아내가, 누군가는 자신을 찾고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 믿음 하나로 버틴다.
그런데 터널 밖의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를 잊기 시작한다.
구조 작업은 예상보다 어렵고, 정부는 현실적인 선택을 말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 구조하려고 공사 다 멈춰야 하냐”는 말이 나오고, 언론은 구조팀을 압박하며 자극적인 보도를 내보낸다.
그리고 세상은 조금씩 ‘실용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한 사람의 존재를 포기해 간다.
그 장면들을 보며 느꼈다.
무서운 건 무너진 터널이 아니라,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포기할 수 있는 사회의 태도라는 걸.
이정수를 끝까지 붙잡아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그의 아내 세현이다.
배두나는 이 역할을 말이 아닌 눈빛과 표정으로 해낸다.
라디오 앞에 앉아 남편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다.
살아있을 수도 있고, 이미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 남편에게.
그런데 그녀는 매일같이, 흔들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그 장면에서 가슴이 저릿했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게 사랑이고, 그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잊히지 않는 건 터널 안에서 정수가 강아지 ‘미나’를 만나 함께 지내는 장면이다.
둘 다 말은 없지만,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정수는 그녀와의 짧은 교감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다운 온기를 되찾는다.
그 짧은 연결이, 어쩌면 이 영화 전체의 상징 같았다.
끝까지 서로를 믿고 지지하는 것.
그게 인간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지 않는다.
마침내 구조되는 순간도 조용하다.
환호도 없고, 극적인 음악도 없다.
그저 지친 몸으로 터널 밖으로 나오는 이정수의 모습이 전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그건 단지 구조의 감격이 아니라,
“다시 살아 돌아온 한 사람”을 우리가 얼마나 쉽게 포기하려 했는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터널>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말은 아껴두고, 감정은 절제하고, 장면은 담담한데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김성훈 감독은 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기보다, 우리가 정말로 마주해야 할 현실로 만든다.
그게 오히려 더 아프게, 더 깊게 와닿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뉴스에서 실종자 구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꾸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걸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숫자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터널>은 한 사람의 생존기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묻는 이야기였다.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그 안에 있던 건 단순한 생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